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치유하시기보다
비참함 속에 그대로 내버려 두어 아주 효과적으로 상처를 입히신다.
실제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완전하게 되는 것보다
당신과 관계 맺기를 더 바라신다.
우리가 자주 상상하는 완전함은 우리를 만족하게 하고 독립적이게 하는데 반해
상처 입는 것은 우리를 초라하게 하고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한다.
이것이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즉, 이상적인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우리의 덕행만큼이나 초라함을 통해
항구하게 그분과 일치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이 끊임없이 넘치도록 흐를 수 있고
우리는 온전히 그분께 내어 드리게 된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완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하느님과 맺는 이 관계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무슨 이유로 사도 바오로의 몸에서
가시를 없애 주시지 않았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이 사실은 생활 속에서 상처받은 가난한 사람들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보다 기도의 은총을 더 자주 받는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하느님을 위한 시간'에서